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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주은이네 이야기

아이들과 처음으로 편지(메일)를 주고 받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교회 다닐 때 '아버지학교'에 대해 들어보았고, 참가 권유도 받았었다. 하지만 스스로 좋은 아빠라고 생각하며(주변에서 나름 좋은 아빠라고들 인정), 아이들이 어리니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나름대로의 변명으로 미뤄왔다. 그러다 휴넷(HUNET)에서 '행복한 아버지 학교' 온라인 수강권을 준다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심심풀이(?)로 이런저런 이벤트 참가를 즐기던 차에 응모를 했는데 당첨이 되었다. 그래서 온라인 아버지학교를 수강하게 되었다.

프로그램 중 자녀에게 편지(메일)를 쓰는 숙제가 있었다. 어리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편지로 소통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왠지 낯설고 쑥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편지를 쓰며 지난 날동안 아이들이 자라온 모습을 돌이켜 볼 수 있었고, 아빠로서 부족했던 나의 모습을 돌아볼 기회가 되었다.

우선, 종현이에게 썼던 편지....
종현아,

아빠가 종현이에게 처음으로 직접 편지를 써 보네. 갑자기 무슨 편지냐고?

응, 아빠가 요즘 ''행복한 아버지 학교(Happy Father School)''라는 프로그램을 듣고 있거든. 그런데 거기서 아빠한테 숙제를 내 줬어. 무슨 숙제냐면 (너는 뵌 적도 없는) 돌아가신 할아버지한테 편지쓰기, 그리고 엄마한테 편지쓰기, 그리고 자녀들한테 편지쓰기 숙제야. 그래서 이렇게 아빠가 처음으로 종현이와 주은이에게 편지를 쓰게 된거야. 매일 보고 아침에 학교갈 때도 매일 같이 가다 보니까 막상 편지를 쓰려니 조금은 쑥스럽다.^^

지금 편지를 쓰면서 종현이 네가 태어나던 모습을 생각해 본다. 엄마가 밤새워가며 힘들게 너를 낳았었지. 너를 낳기 전까지 아들인지 딸인지 모르고 있었는데 엄마는 아들이라니까 참 좋아했었어. 지금도 엄마가 우리 종현이 참 좋아하고 이뻐하잖아. 힘들게 낳아서 더 그럴지도 몰라. (주은이는 너를 낳아본 경험이 있으니까 좀 더 쉽게 낳았거든.)

지난 날들을 생각해보니 종현이가 정말 많이 컸네. 아빠가 미국에 공부하러 갈 때 종현이는 유모차 타고 갔는데 이제는 혼자서 지하철 타고 학교도 다녀올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야. 그리고 한글 읽는 것도 서툴던 네가 이제는 한국어 책들도 잘 읽고 일기도 잘 쓰고, 또 크게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자랐으니 그것도 고마운 일이고 말야. 앞으로도 늘 건강하고 또 지금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라면 좋겠다. 물론, 하나님을 잘 믿고 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좀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베풀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지. (무엇보다 주은이하고 싸우지 않고 네가 손해라고 생각해도 양보를 잘하는 오빠가 되면 좋겠다.)

그리고, 요즘 아빠가 계속 하는 말하지만 종현이가 몸이 많이 큰만큼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져야 하겠지. 그런데, 아직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도 자꾸 엄마나 아빠가 도와주길 바라는 것 같아. 앞으로 이것은 조금씩 고쳐 갈 수 있겠지?

아빠는 종현이가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잘 해내리라 믿어.

무슨 이야기할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편지가 길어졌다. 그런데 막상 쓰면서 보니 할 얘기가 많이 있네. 다음 기회에 또 써야겠다. 종현이도 가끔 아빠한테 편지써봐. 물론, 매년 어버이날에 편지 써주고 선물 만들어 준 것 기억해. 고마워.

우리, 다음에는 아빠랑 종현이의 ''꿈''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그럼, 이번에는 이쯤에서 그만 쓸께. 날씨가 쌀쌀해졌는데 감기 조심하고,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잘 지내고, 집에서는 엄마 말씀 잘 듣고, 동생 주은이랑 잘 지내. 물론, 아빠하고도 말이야. 알았지?

종현아, 사랑해.

사랑하는 아빠가.

메일을 받아본 종현이가 다음날 답장을 했다. (원래는 문단구분없이 한 문단으로 길게 쓰여졌는데 편의상 임의로 문단구분을 하였음.)

아빠 나도 아빠 사랑해요.

그런데 해피 아버지 스쿨이 뭐예요. 아빠 그 스쿨 재미있어요? 저도 아빠랑 같이 학교 다니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들 (특히 차에서 많이) 많이 해서 아빠랑 다니는 것이 별로 안 싫고 (기도 하는 것은 싫은데) 좋아요.

아빠 저도 할아버지 하고 엄마 한테 한 번 편지 써 볼레요. 아빠 그 뭐였더라 아!! 해피 아버지 스쿨에서 많이 배워서 좋은 아빠가 되어 재미있고 아이들에게 잘 해주고 선생님 처럼 가르쳐 주고 그렇게 좋은 아빠 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지금도 해피 아버지 스쿨을 안 다녀도 참 좋고 아빠 처럼 좋은 아빠는 없어서 해피 아버지 스쿨에 안 다녀도 되는데 왜 다녀요.

저도 커서 아빠 처럼 좋은 아빠가 되고 이 해피 아버지 스쿨에 들어가서 좋은 아빠가 될 거예요. 그리고 지금부터 동생이랑 안 싸우고 엄마 말 잘 들을게요. (미안하지만, 또 주은이랑 싸우고 엄마한테 찡찡 부릴 수 있는데 안 되게 노력할 게요. 그리고 지금 부터는 좋은 아빠가 아닌 좋은 오빠가 되게 노력할 게요.) 끝.

다음은 주은이에게 보냈던 편지...
주은아,

아빠야. 아빠가 우리 주은이한테 편지쓰는 거야.

주은이는 어린이 집에서 그리고 폴리 유치원에서 엄마, 아빠한테 편지 써 본 적 있지? 그런데 아빠는 지금이 주은이한테 처음 쓰는 편지네. 앞으로는 아빠도 가끔 주은이한테 편지쓸께. 주은이도 아빠한테 가끔 편지쓰는 거야, 알았지?

추석때까지는 주은이가 아빠랑 수영장 다니면서 재미있게 놀았는데 이제는 점점 추워져서 수영장 가기는 힘들겠다, 그치?

주은이는 감기 잘 걸리니까 옷 따뜻하게 입고, 잘 때도 이불 잘 덮고 자야돼. 알았지? 주은이가 아프면 엄마, 아빠도 마음이 아프거든.

요즘 엄마, 아빠는 주은이가 폴리에서도 친구들하고도 잘 놀고 선생님들한테도 칭찬받고, 미술 배우는 것도 좋아하고 잘하니까 참 좋아. 주은이가 그린 그림들 보면 참 잘 하는 것 같아. 앞으로도 재미있고 좋은 그림 많이 그려줘, 알았지?

아빠는 우리 주은이가 매일 웃으면서 아프지 않고 키도 점점 크고 계속 이쁘게 자라면 좋겠어. 기도도 예쁘게 하고, 노래도 이쁘게 하고, 인사도 이쁘게 하고 말야. 아빠는 우리 주은이가 잘 할 것이라고 믿어. 하나님한테 기도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오빠하고도 조금만 다투면 좋겠어. 오빠가 주은이 약올리고 괴롭히고 잘못할 때가 많지만 어떨 때는 주은이가 잘못 할때도 있거든. 그런데 주은이는 아빠가 주은이가 잘못했으니까 그러면 안된다고 하면 아빠한테도 화내잖아. 그것은 잘못된 거야. 우리, 이거 고치는거야. 알았지? 자, 약~속!

아빠 편지 읽어보니까 어때? 좋아?
오늘은 이만큼만 쓰고 다음에 아빠가 또 편지 써 줄께. 알았지?

사랑해요~!

사랑하는 아빠가.

주은이는 아직 메일계정도 없고, 메일 보내는 것이 어려워서 핸드폰을 이용한 문자답장을 보내왔다. (내가 직장전체 1박2일 워크샵으로 집을 떠난 날이었다.)

아빠 너무 보고싶어요 아빠 사랑해요 아빠 아빠사랑하는 것 알죠 아빠 잘자요 내일 빨리와요
(문자 메시지라 그런지 마침표가 없다.)

앞으로 얼마나 자주 메일을 주고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첫걸음을 했으니 아이들과 좋은 소통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좋겠다. ^^

* 당신이 혹시라도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아빠라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행복한 아버지 학교'를 수강하실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