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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주은이네 이야기/CK's Story

아이들을 잘 보는 남자 vs. 주방 일을 잘 하는 남자

졸업을 하고 취업준비중인 나는 현재 공식적으로 백수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 가족 전용 '김기사'가 되었다. 졸업 이전에는 아이들 어린이 집이나 기타 장소에 데려다 주고 데려 오는 것은 아내의 몫이었는데 이제 아내는 조수석에는 앉아도 운전대를 잡지 않는다. (물론 아내의 개인적인 스케줄인 경우에는 아내가 차를 쓰기 때문에 (그리고 아이들이 어린이 집이나 섬머 캠프에 가 있는 시간 동안에는) 나 혼자 집에 남아 정말 백수처럼 빈둥거리기도 한다.)

그런데 집에 혼자 있어도 곧 이사를 해야 하므로 짐 정리 할 생각하면서 집을 둘러보면 무슨 짐이 그새 그렇게 늘었는지 걱정이 좀 된다. 그러다 주방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거리를 보기도 하지만 선뜻 팔을 걷어붙이고 수세미를 잡게 되지 않는다. 또 아내 없이 혼자서 점심시간을 맞더라도 이것 저것 뒤져서 해먹으려고 하기 보다는 그냥 대충 라면으로 때우거나 아이들 과자로 때운다. (그것도 귀찮으면 그냥 굶는다.)

서울에서 대학원 다니면서 자취 생활도 2년 정도 했는데도 왠지 주방 일은 잘 못하고 관심이 없다. (못해서 관심이 없는 건지, 관심이 없어서 잘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자취 초기에는 밥도 몇 번 해 보았는데 재료를 1인분씩 사기도 힘들다 보니 자꾸 남아서 버리게 되고, 그러다 보니 그냥 밥은 학교에서, 동네에서 사서 먹는 것으로 해결하게 되었다.

주변에 주방 일을 좋아하고 잘 하는 남자들이 있다. 싱글 유학생 남자인데 오히려 기혼인 우리 가족을 초대해 음식 대접을 하는 학생도 있었고, 교회 성가대 간식으로 빵이나 브라우니를 구워오는 '젊은 총각'(여 집사님들 표현)도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맛있게 잘하네 하는 생각은 들어도 나도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든다.

나중에 종현이마저 나처럼 주방 일에는 완전히 무관심한 사람이 되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있어서 내가 본을 보여야 할텐데라는 생각은 가끔 하는데도 몸이 말을 잘 안 듣는다.^^;

그렇다고 내가 집안 일을 잘 안 하는 사람은 아니다. 집안 일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주방 일 빼고는 대부분(아이들 보는 일, 청소, 빨래, 우편물 정리, 은행 계좌 관리 등)은 내가 주로 하거나 아내를 많이 돕는 편이다. 특히 아이들 보는 일만큼은 아내도 자기보다 더 잘 본다고 할 정도로 많은 부분을 내가 담당한다. 아내가 며칠 집을 비우는 경우 (주방 일을 잘 못하는 관계로) 먹이는 게 좀 부실하긴 하지만 아이들과 지내는 것이 그리 힘들거나 귀찮지는 않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의 모임에 가면 아내는 '외교'로 바쁘고 나는 아이들 보느라 모임에서 소외(?)되곤 한다. (그래서 아내는 우리 집의 외교부 장관이고, 나는 교육부 장관이다.) 그래도 요즘엔 아이들이 좀 커서 손이 덜 가서 나도 편해졌다.

아내가 가끔 주방 일을 안 도와준다고 불평하긴 하지만 몇 번 시켜 보고는 (그것도 주로 설거지) 너무 느리고 못 미더운지 나중에는 별로 부탁도 안한다. 그래도 아이들 잘 보는 덕에 구박 내지는 불평을 덜 받는 편인 것 같다.

그냥 궁금해졌다. 다른 남자들의 경우 주방 일을 잘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지 아니면 아이들을 잘 보는 (아니면 그 외의 집안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많은지 궁금하다. 그리고 여자들의 경우 어떤 타입의 남자들에게 더 점수를 주고 싶은지 말이다.

물론, 둘 다 잘 하면 좋겠지만 그런 남자들은 많지 않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