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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생활 이야기

기계와 영어로 대화하기

미국에서 1-800 혹은 1-888, 1-877 등으로 시작하는 수신자 부담 전화번호를[각주:1] 이용하면  거의 100% 기계가 응답을 하며 원하는 서비스 번호를 누르라며 번호를 안내한다. 예를 들면, 처음에 '영어로 들으려면 1번, 스페인어로 들으려면 2번' 이런 식이다. 이런 저런 과정 다 귀찮고 상담원과 연결하려면 0번을 누르면 된다. [각주:2] 행여나 자동응답 기계의 설명을 놓치면 반복해서 들어야 하고 어떤 경우 다시 걸어서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어제는 이번 주말에 샌디에고(San Diego)로 기차(Amtrak)를 타고 우리 가족인 봄소풍(?)을 가기로 해서 기차표를 예매하려고 했다. 인터넷 예매가 가능하긴 한데 내가 가지고 있는 할인쿠폰은 전화로 예약을 해야 적용할 수 있다길래 전화(1-800-USA-RAIL)를 걸었더니 역시나 기계가 받는다. 그런데 어? 조금 틀리네.

자기를 자동화된 에이전트(automated agent) Julie라고 소개하더니 오히려 질문 및 명령(?)을 한다.
"원하시는 서비스가 무엇인가요? 기차 역 정보를 원하시면 'Station', 기차 시간표나 예약을 원하시면 'Scheduel'이라고 말씀하세요."
"스케쥴!" 했더니, 바로 "원하시는 여행 날짜를 말씀하세요." 그런다.
다음에는 "출발역을 말씀하세요."  묻는다.
그리고 또 다음에는 "도착역을 말씀하세요" 라고 요구한다.
이런 식으로 하나 하나 묻고 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예약을 받는다.

중간에 내 발음이 틀렸는지 "어른 2, 아이 1 (2 adults, 1 child)"라고 했는데 '어른 3, 아이 1 (3 Adults, 1 child)' 로 알아듣는다. 그래서 수정을 하려고 다른 말을 했더니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겠다며 자기가 얘기한 게 맞는지 틀리는지 'Yes or No'로 답하란다. 'No!' 그러면 'Sorry, My mistake.' 그러면서 다시 묻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겨우겨우 예약을 마쳤다.

다 끝내고 나니 한편으로는 재미있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정해진 틀(예상된 답변)에서 벗어난 대답을 하면 못 알아듣고 헤매는 기계와 얘기하는 답답함을 느꼈다. 특히 기계가 내 발음을 못 알아 듣는 경우  정말 답답하다. 발음이 틀렸나 싶어서 혀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도 못 알아 듣는 말은 못 알아 듣는 것 같다. (외국인이기에 어쩔 수 없는 발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아무튼 얼굴을 마주보고 하는 영어도 힘들 때가 있는데 소리만 들으며 기계하고 하려니 참 번거로운 것은 사실이다.

* 자동 녹음된 기계하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면 통화 중간에 언제든 '0'을 누르면 진짜 Amtrak 전화 상담원에게 연결된다.

  1. (한국에서는 클로버 서비스라고 하여 080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본문으로]
  2. (연결되는 상담원이 사실은 미국사람이 아니고 인도에 있는 인도사람인 경우가 많단다. 인터넷 전화망을 이용하여 인건비가 싸고 영어가 가능한 인도 사람들이 전화상담원 일을 많이 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