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현-주은이네 이야기

재미없는 천국 미국, 재미있는 지옥 한국

미국에서 살다보니 여기 사는 (한국)사람들이, 특히 남자들이 가끔 하는 표현이 있다.
"미국은 재미없는 (혹은 지루한) 천국같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같다."[각주:1]

무엇보다 한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밤문화(술문화)'를 여기서는 보기 힘들다. 한국에서의 일부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그런 밤문화는 제외한다고 해도 (친구들과 혹은  직장동료들과 저녁에 모여서 먹고 마시는) 일반적인 밤문화조차 이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살고 있는 얼바인에는 술집자체를 찾기가 힘들다. 핏자집이나 일반레스토랑에서 맥주나 와인을 같이 마실 순 있지만 저녁먹으면서 음료삼아 마시는 것이지 본격적인 술마시기를 할 수 있는 곳이 별로없다. 그나마 있는 몇 곳도 주중에는 밤 11시, 주말에도 12시쯤 늦어도 1시에는 문을 닫는다. 그래서 유학생들이 술마시고 싶으면 마켓에서사다가 집에서 마신다. (그나마 캘리포니아 지역은 일반 마켓에서 술을 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타주에서는 술만 파는 리커하우스(Liquor House)에 가야만 술을 살 수 있다고 들었다. 그 술가게가 일찍 문닫아서 문제지...)

늦은 밤문화가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대부분의 직장이나 학교가 7시 혹은 8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이 곳 사람들은 참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밤 9시 넘어서는 큰 길에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다. 또 주택가 가보면 대부분 불이 꺼져있다.  주말에 파티를 하며 노는 것 같긴 하지만 그냥 집에서 노는(?) 것이고 가족 단위로 함께 하는 모임이 대부분이다.

주말이 되면 이 곳 사람들은 집안정리를 하거나 가족단위로 외출, 쇼핑을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철물점 같은 Warehouse에서 집안 정비 물품을 사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많이 보이고, 쇼핑몰에는 가족 단위로 나와서 쇼핑을 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남자들은 그냥 집에서 쉬고 싶기도 하겠지만 집에서 혼자 아이들 보기 싫으면 따라 나가야 한다. (이 곳에서 12살 이하의 아이들만 집에 남겨두고 부모가 외출하는 것은 불법이란다.)

또 주말에 무슨 놀이행사나 볼거리가 좀 된다 싶으면 또 가족들 데리고 거기를 다녀야 한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별로 볼 것도 없고 재미도 없는데 무슨 사람들이 그리도 많이 오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다른 할 일이 없으면 그런 재미없는 행사에도 다 오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들도 나를 보며 마찬가지 생각을 할 지도 모르지만...)

교회를 다니는 집은 주일(일요일)이 되면 또 교회가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외 주말에 가끔씩은 해변이나 공원에서 이웃들과 고기를 구우며 피크닉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공원에서의 음주가 금지되어 있기때문에 정말 건전하게(?) 고기와 밥만 먹고 잠시 놀다 와야 한다.

이처럼 늘 직장(학교)-집-교회로 이루어지는 단조롭고 지루한 생활패턴에 주말 시간의 대부분을 늘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이 곳에서의 생활이 재미없을 것이다. 하지만 늘 쾌적한 날씨, 안전하기로 소문난 도시, 사교육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적어도 한국의소위 입시지옥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교육 환경은 적어도 가족들에게는 '천국'의 조건이 될 지도 모르겠다. 또 골프나 운동을 좋아하는 남자들에게도 골프나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한국보다 좋은 환경에 더 저렴한 비용으로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 천국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국의 '재미있음'과 '지옥'의 모습을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재미없는 천국'과 '재미있는 지옥' 중 어느 곳에서 살고 싶은지 궁금해졌다. (한국은 지옥이고 미국은 천국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니라 생활환경과 언어환경이 그렇게 주어졌을 때 어디서 살고 싶은가를 묻는 것이다.)

지난 번에 "미국에서 살까? 한국으로 돌아갈까?" (관련글 보기) 글에서 내 생각을 밝혔었는데, 이제 이 재미없음에 익숙해졌는지, 아니면 적어도 아이들과 아내에게는 늘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천국'이기 때문인지, 그냥 이 천국에서(미국의 생활환경이 그렇다는 것이지 미국이 무조건 천국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든다.  그래도 결국에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알고 있지만 말이다.

  1. 한국에서 나는 주로서울에서 살았다. (대학가기 전까지는 춘천에서 자라서 고향을 이야기할 때는 춘천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얼바인(Irvine)이란 도시는 인구 20만이 약간 못 되는, LA에서 약간 벗어난 중소도시이다.  따라서 미국의 극히 일부분에지나지 않는 이 곳 얼바인의 생활과 대한민국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에서의 생활을 직접 비교한다는 것이 정확한 비교라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냥 '미국'과 '한국'이라 하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