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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생활 이야기

아버지됨 그리고 자녀됨

지난 월요일이 우리 가족의 “가족생일”이었습니다. 남들은 ‘결혼기념일’이라고 부르는 그날을 저는 언제부터인지 가족생일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부부가 결혼을 해서 한 가정을 이루고 또 자녀를 낳아 한 가족으로 살게 되니 단순한 결혼기념일이 아니라 가족생일이 되어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부부만의 기념일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로 보내려고 합니다.

 

제가 요즘 가장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일 중의 하나가 “좋은 아버지(아빠) 되기”입니다. ‘좋은 아버지’의 의미에 대해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이들에게 때로는 인생의 멘토(선생님)가 되어 삶의 올바른 가치를 심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가 되어 함께 웃고 즐기며 놀아줄 수도 있는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좋은 아버지 되기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 유학생활이 끝나가던 시점이었습니다. 다니던 교회에서 참가했던 한 프로그램에서 오늘 죽는다고 가정하고 가족들에게 미리 유서를 작성해보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다른 사람들은 장례절차며 남은 유산의 처리문제 등을 잘 작성해 가는데 막상 저는 몇 자 써 나가지 못하고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죽는다는 것 자체도 두려웠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 해 준 것도, 남겨 줄 것도 아무것도 없이(저는 그저 ‘가난한 유학생’이었으니까요) 그냥 이 세상을 떠난다는 생각이 못내 아쉽고 서럽고 슬펐던 모양입니다.

 

이후 저는 종종 ‘나는 어떤 아버지인가?’라는 질문을 제 자신에게 물어보곤 했습니다. 스스로 나름 가정적인 남편이며,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 잘 돌보고 잘 놀아줘서 주위 사람들이 좋은 아빠라고 불러주고, 저도 나름 좋은 아빠라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만의 착각이고 교만은 아닐지, 아내나 아이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로서의 저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아이들이 시각에서 보니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막상 아이들과는 제대로 된 소통을 못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이해심 많고 자상한 남편이 아니라 아내의 약점으로 은연중 아내를 무시하는 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업 실패로 집을 나가셨다 병을 얻으셨고 끝내 빚만 남겨놓고 일찍 세상을 떠나셨던 아버지. 그래서 아버지와의 추억이 초등학교 시절 몇 년 빼고는 별로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보다는 아버지 없이 지낸 시간이 더 많은 나이가 된 제가 어느덧 이제 두 아이에게 ‘아빠’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비록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이 많지는 않았지만 어느날 거울에 비친 제 얼굴에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거울 속의 제 모습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외모의 닮음을 떠나 이제 저도 '아버지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25년이 되어서야 그것을 깨닫는 철없는 아들로서 말이죠. ㅠ.ㅠ

이렇게 아버지됨과 아들됨을 오가며 생각하다 보니 하나님 아버지께 저는 어떤 아들로 보일까도 궁금해집니다. 매일 하나님께 ‘~~ 하겠다’며 약속은 너무도 쉽게 잘하면서 막상 실천을 해야 할 때는 ‘다음에...다음에...’를 외치고 있는 모습은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들에게는 항상 “약속을 했으면 꼭 지켜야 하는거야”라고 가르치면서도 말입니다.

 

이런 저에게 얼마 전에는 오히려 어린 딸이 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딸이 수영을 배우기 시작해서 하루는 제가 구경을 갔는데 그날 밤 아이가 잠자리에 들기 전 기도를 마치자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아빠가 보고 있어서 더 잘하고 싶었는데 잘 못했단 말이야~!"하면서 더 크게 웁니다. 딸을 꼬옥 안아주면서 위로해주는데 "아빠가 보고 있어서 더 잘하고 싶었는데..."라는 딸의 표현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린아이도 아빠 앞에서 저렇게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는데, 나는 어떤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내 모습은 어떨까?"하는 마음으로부터의 질문이 제게 묻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가 지켜보신다'고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 생활에서는 부끄럽기 그지 없는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어린 딸이 눈물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내 모습을 지켜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기뻐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라며 아빠에게 올바른 신앙의 자세를 가르쳐 준 셈이죠.

 

결국 하나님이 제게 가족을 주시고 아버지됨을 허락하신건 하나님 아버지의 오래참음과 인자하심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녀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 그리고 우리 스스로 부족한 자녀됨을 반성하고 더 노력하라는 의미를 함께 가르쳐 주시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아이들을 머리로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삶으로 모범을 보이며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배우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우라는 것 같습니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신명기 4:9)

 

우리 아이들에게 기도의 과제와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다면 저는 참 “행복한 아버지”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기를 소망하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