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현-주은이네 이야기/CK's Story

"나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나" (휴넷 '행복한 아버지학교' 수강 수기)

지난 설날 연휴 집에 가서 어머니와 얘기하다 경제적으로 참 어려웠던 우리 형제들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잠시 하셨다. 누군가가 어머니한테 “남편이 집에도 잘 안들어 오고, 돈도 잘 안 갖다 주는데 힘들어서 어떻게 사냐? 남편 버릇 고치기 위해서라도 집을 나가라고...” 하셨단다. 그래서 한 번은 모질게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섰지만 얼마 못 가 어린 우리 형제들 생각에 이내 다리가 떨리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 흘리며 집으로 돌아오셨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런 놀라운 이야기를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 하시지만 그 당시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셨을까? 또 정말 우리를 버리고 떠나셨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궁금하면서도 끔찍했다.

그 시절 나의 아버지, 곧 어머니의 남편은 요즘 개그코너의 ‘남하당’으로 묘사되는 전형적인 남편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사업 실패로 병을 얻으셨고 끝내 빚만 남겨놓고 일찍 세상을 떠나셨던 아버지셨기에 나도 아버지와의 추억이 초등학교 시절 몇 년 빼고는 거의 없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보다는 아버지 없이 지낸 시간이 더 많은 나이가 된 나도 어느덧 이제 두 아이에게 ‘아빠’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가장이 되었다.

미국 유학생활 시절, 다니던 교회에서 참가했던 한 프로그램에서 오늘 죽는다고 가정하고 가족들에게 미리 유서를 작성해보는 순서가 있었다. 거기서  다른 사람들은 장례절차며 남은 유산의 처리문제 등 잘 작성해 가는데 막상 나는 몇 자 써 나가지 못하고 펑펑 울고 말았다. 죽는다는 것 자체도 두려웠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 해 준 것도, 남겨 줄 것도 아무것도 없이 그냥 이 세상을 떠난다는 생각이 못내 아쉽고 서럽고 슬펐던 모양이다.

이후 나는 종종 ‘나는 어떤 아버지인가?’라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물어보곤 했다. 스스로 나름 가정적인 남편이며 아이들 잘 돌보는 좋은 아빠라고 생각해 보지만 그것이 나만의 착각이고 교만은 아닐지, 아내나 아이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로서의 나의 모습은 어떨까 궁금했다.

그래서일까? 미국에서 다니던 교회에서 아버지 학교 수강을 권유받았을 때는 ‘아이들이 어리다’, ‘나는 이미 좋은 아빠다’는 등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피했던 아버지 학교를 스스로 수강하게 되었다. 어쩌면 ‘행복한 아버지 학교’는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이었기에 수강결정을 더 쉽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선,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편인 내가 어쩌면 나도 몰랐던 아버지로서의 내 본모습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면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수강을 하면서 역시나(!) 내가 아이들이 크고 자라는 만큼 그에 맞춰서 준비된 좋은 아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막상 아이들과는 제대로 된 소통을 못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해심 많고 자상한 남편이 아니라 아내의 약점으로 은연중 아내를 무시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또,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아들이 되어 이제는 아버지가 된 나를 바라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비록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이 많지는 않았지만 어느날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외모의 닮음을 떠나 이제 나도 '아버지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25년이 되어서야 그것을 깨닫는 철없는 아들로서 말이다. ㅠ.ㅠ

‘행아학’을 수강했다고 모든 가정에 부부간의 갈등이 치유되고 아버지와 자녀의 대화가 회복되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의 경우 그동안 부부사이 혹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큰 갈등도 없었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지만 어려움 없이 지내왔기에 큰 변화가 온다면 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도 스스로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책도 잘 읽어주고, 좀 더 많은 추억을 함께 할 수 있는 아빠가 되기 위해 내 자신이 조금씩, 그리고 꾸준하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소중하고 큰 변화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에게 아버지학교 수료증을 받음)



아내 혹은 자녀와 대화를 할 때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는 태도가 아니라 그들의 말을 가능한 많이 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고, 아이들에게 하는 언어의 선택도 보다 신중해졌다. 그리고, 가정 밖에서 얻는 스트레스를 가족들에게 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가장인 내가 스스로 그리고 먼저 나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아이들도 자신들의 꿈을 찾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지 기대하며 나의 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을 단지 부부만의 기념일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탄생한 ‘가족생일’로 기념하며 아이들에게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느끼게 해주려고 노력한다. 무엇보다 ‘좋은 아버지, 행복한 가정 만들기‘를 머리로 아는데 그치지 않고 몸으로 행동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결혼을 하면서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좋은’이란 단어는 가정에서 나를 상대하는 대상, 즉 아내나 아이들 혹은 제3자가 느끼는 감정인 것 같다. 내 스스로에게는 좋은 아빠가 아니라 ‘행복한’ 아빠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냥 남에게 보여지는 좋은 아빠가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이면서 나를 좋게 봐주는 아내와 아이들 덕분에 스스로 행복해 질 수 있는 아버지... 그래서 나는 ‘행복한’ 아버지이고 싶다!

그리고, 이 시대에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많은 아버지들도 행복한 자신 그리고 늘 웃음꽃이 피어나는 즐거운 가정을 꿈꾸며 노력하길 소망한다. 그래서 마침내 모든 가정이 행복해져서 끝내는 휴넷 ‘행복한 아버지 학교’가 폐강되고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실현되면 좋겠다. ^^

* 이 글은 "행/아/학"(행복한 아버지학교) 1주년 기념 수기공모에 제출했던 글입니다. 그래서 휴넷 아버지학교 홈페이지에도 걸려있습니다. ^^

** 제게 행/아/학 온라인 수강권이 아직 4장 남았습니다. 혹시라도 이 글 보고 필요하신 분 댓글로 연락처 남겨주세요. 수강권 번호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이전 글 참조: http://CYJN.com/7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