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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주은이네 이야기/John's Story

"경기에 졌지만 나는 골을 넣어서 기뻤다"

어제(11/7) 스포츠뉴스는 (당연히) 박지성선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 울버햄턴과의 홈경기에서 전반 종료 직전 선제골과 후반 종료 직전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었다'는 소식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게는 더 큰 뉴스가 있었다. 바로 종현이가 축구(유소년 클럽축구)를 시작한지 3년만에 공식게임에서 첫 골을 넣었던 것이다.

미국에 있던 2007년 가을부터 축구를 시작했으니 만3년만에 첫 골을 넣은 셈이다. 골을 넣은 시합은 한국유소년클럽축구연맹에서 주최한 "한국유소년 클럽 축구리그 왕중왕전"이었다. (그렇다고 결승은 아니었다. ^^;;) 그런데, 종현이는 정작 누구랑 시합했는지는 모른다. 그냥 '어떤 하얀 유니폼을 입은 팀'식으로 기억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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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미국에 있을 때 팀(10명)의 유일한 한국선수였던 종현)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빠, 엄마는 아들의 골넣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종현이가 골을 예고하고 넣는 것도 아니라서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도 없다. ㅠ.ㅠ) 하필이면 경기가 주일(일요일) 열리는 관계로 종현이만 축구장을 보냈는데 아빠, 엄마가 없는데서도 꿋꿋하게 잘 뛰었던 모양이다.

오후에 종현이를 데리러 갔더니 아직도 흥분이 안 가신 표정으로 골을 넣었다며 스스로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몇 번이나 골을 넣은 상황을 이야기한다. 자기는 박지성처럼 두 개의 심장을 가졌고, 이영표처럼 빠르고, 박주영처럼 골을 잘 넣는다고 잘난척까지 오버한다. 다음은 종현이가 일기로 남긴 골 넣는 장면...
달리기가 빠르고 수비수를 잘 재치는 (상대편) 애 두 명이 골을 넣었고 어떤 애가 심판에게 몇 분 남았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심판의 대답은 30초였다. 그 때 마침 코너킥 이었다. 민수가 찬 공은 골키퍼 손에 맞고 나갔는데 문호는 헛발짓을 했고 공이 튀기고 있었을 때 내가 발리 슛으로 골을 넣어서 경기가 끝났다. 모든 애들이 울었는데 나는 골을 넣어서 기분이 좋은지 울음이 안 나왔다. 내가 넣은 골이 계속 생각이 난다.

생각해보니 이번 게임을 앞두고 종현이가 골에 대한 열망이 간절했던 것 같다. 우선, 새 축구화를 갖고 싶어했다. (지난 주부터 축구화를 새로 사 달라며 학교 숙제, 생각노트 쓰기 등 축구화를 사달라고 요구할만한 칭찬점수를 받기 위해 며칠 갑작스런 '열공 모드'였다.) 그 노력이 가상했는지 축구화를 사주기로 약속한 점수가 몇 점 부족하긴 했지만 아내가 새 축구화를 사줬다. 새로 산 축구화를 며칠 신어보더니 (아직 신발 길이 안들어 좀 불편하지만) 공이 잘 맞고 잘 나간다고 좋아했다. 그러면서, 이번 게임에서 꼭 골을 넣었으면 좋겠다고 여러번 이야기했었다. (엄마, 아빠는 '설마'했는데 결국 종현이가 사람대신 골을 잡았다. ^^)

(공식대회에서 첫 골을 넣은 종현이의 '새로 산' 축구화)

아무튼, 이번 게임을 계기로 '꿈은 이루어진다'의 거창한 경험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믿고 기도하며 노력하면 이뤄진다는 교훈을 얻은 것 같다. 앞으로도 화이팅이다, 종현아!

(2010년 11월: 비록 골 넣은 장면은 못 잡았지만...)



덧붙임 1)
아침에 종현이를 보내기 전에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 주인공 에릭 리델(Eric Liddel)이야기를 하며 교회가자고 했더니, "그건 달리기고...이건 축구잖아요"라는 말같지 않은 변명으로 대회 참가..^^ (그래도, 경기가 다 끝나고 친구네 가족과 같이 다른 교회에서 예배는 참석했다.)

덧붙임 2)
축구화를 사주기에는 칭찬점수가 부족했는데도 엄마가 축구화를 사줬는데, 정작 종현이의 반응은 '기가 막혔다'고 한다. 종현이의 일기 중: "축구화를 사기 위해서 나는 오늘 생각노트 6페이지를 해야지만 (노느라) 안했다. 그런데, 방과후 컴퓨터가 끝나고 나왔더니 엄마가 축구화 사자고 그래서 나는 기가 막혔다. 나는 축구화를 살 생각은 하나도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