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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주은이네 이야기/CK's Story

나는 왜 박사학위가 '필요'한가?

요즘 한국사회가 '학력위조' 문제로 시끌시끌한 것 같다. 여기저기서 유명인들(솔직히 그 중에 더러는 누구인지 잘 모르겠고 관심도 없었다)에 대한 언론과 네티즌의 검증에 의한 폭로, 또는 본인들의 자기고백이 뒤따르고 있다. 예전의 민주화 운동시절에는 대학생들 혹은 대학 졸업자들이 고졸로 학력을 속이고 '위장취업'을 했었다고들 하는데 이제는 고학력의 인플레이션 사회가 되어서 학력을 뻥튀기 해서라도 먹고살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나 보다.

일련의 뉴스를 보면서 현재 박사학위를 위해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 신분의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왜 멀쩡히 다니던 직장에 사표까지 쓰고 (원래는 휴직을 하려고 했는데 직장에서 사표를 요구) 이곳 미국까지 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그리 적지 않은 나이에 가족까지 데리고 와서 이러고 있는 것일까? 나는 정말 공부를 좋아해서 내 전공분야의 박사가 되고 싶은걸까  아니면 그냥 박사학위가 필요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 오기 전까지는 공부를 좋아하는 줄 알았고 그러니 당연한 코스라 생각했다 (박사 --> 대학교수 혹은 연구원). 그러나 지난 5년간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드는 생각은 나는 그냥 박사학위가 멋있어 보이고 탐나기 때문에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다니던 직장이 연구원이다보니 온통 박사들이고 박사학위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에 대한 대우에서 차이가 있는 것도 같고 학위 없이는 계속적인 연구원 생활에 한계가 있어 보이니까 그냥 '필요'에 의해 공부를 하겠다고 아니, '박사증'을 따 오겠다고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실제로 연구원에서 일을 할 때 만나게 되는 일부 외부 사람들이 가끔은 나에게도 '박사님' 호칭을 붙이곤 했었다. 아직 박사 아니라고 부정을 하면서도 (비록 형식적일지라도) '박사님'으로 대접받는 것이 싫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만약 당시 내가 적극적인 부정을 하지 않았다면 나도 자연스럽게(?) 학력을 위조하며 살 수도 있었으려나?)

지금 학교에서 같이 박사과정을 시작한 동기가 20명정도 되는데 학업을 온전하게 마치거나 마칠 예정인 동기들은 7명 (한국인 3, 미국인 2, 중국인 1, 인도인 1)뿐이다. 나머지는 중도에 스스로 포기하고 그만 두고 다른 길을 찾아나섰다. 한국인들은 끝까지 살아남기(?)는 했지만 우리들끼리 하는 얘기는 '그만 발을 너무 깊이 담가 버려서'  아니면 중도에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거나 하면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힐테니까 그것이 무서워 빼지도 못하고 그냥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학위를 마치면 장미빛 미래가 보장되거나 소위 '대박'이 터지는 것도 아니다. 박사가 넘쳐나다 보니 졸업 즈음에는 학부졸업생들 못지 않게 취업문제가 큰 고민거리다. 수 십 군데 혹은 수 백군데 이력서 내고, 잘 되면 면접까지 보고,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 취업이 되면 성공이고 아니면 또다른 실패다. 그래도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후배들은 말한다.

"그래도 선배는 '미국박사'잖아요. 한국박사는 알아주지도 않아요."

이처럼 사람을 그 실력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위로 평가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때문에 많은 이들이 필요 이상으로 외국 유학을 하고, 석.박사 학위를 받으려고 하고 (물론, 공부를 정말 좋아하는 일부 사람은 제외), 심지어는 학력을 위조하면서까지 남보다 나아 보이려고 한 것은 아닐까?

이곳 교수들을 보면 공부는 정말로 공부를 좋아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한국과 달리 여기서의 교수란 직업은 그냥 많은 직업 중의 하나로만 보이는 것 같다. 일반 직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에 대한 자유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보수면에서는 그리 매력적인 직업도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나도 이제부터라도 필요에 의해 박사학위를 추구하기 보다는 그동안 나름대로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공부를 정말 열심히 '즐기며' 해야겠다. (아무튼,  발을 빼기에는 너무 늦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