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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지식인의 학자적 양심에 대하여

이 글은 정치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거나 혹은 비방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각 후보의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 그룹에 대하여 '쓴소리'를 하고 싶을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큰 이슈 중의 하나는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인 것 같다. 2002년 여름에 미국에 와서 당시의 대선에도 투표를 못 했는데 올해도 투표는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멀리서나마 대통령 선거에 아니,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 있기에 몸으로의 참여는 힘들지만 뉴스상으로나마 선거관련 소식을 접하고 있다. 올해 한국의 대선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본선보다 예선이  더 흥미진진한 게임같다. 이른바 범여권이란 곳에서는 유력한 대선후보가 아직 오리무중 상태에 있고 야당인 한나라당은 소위 빅2(이명박, 박근혜)가 마치 '한나라당 경선승리=대통령'인냥 열심히 싸우고 있다.

유력한 후보일수록 유명인들의 지지선언을 세 과시의 수단으로 쓰기도 하고 실제로 많은 교수, 박사 등 지식층 전문가 그룹이 정책 혹은 공약 개발에 참여하고 (혹은 참여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럴듯 해 보이는 많은 청사진을 제시하며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 장밋빛 미래는 이해하기 쉽게 보통 경제지표를 나타내는 수치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수치들은 어떠한 가정하에서, 또 (절대 현실이 될 수 없는) 어떠한 모델의 논리적 구조에 바탕한 것인지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쉽게 말해, 원하는 답(장밋빛 미래)을 얻기 위해 비합리적인 혹은 현실적으로 무리한 가정을 세우면 경제적으로 아무런 가망성이 없는 사업도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 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소위 전문가 집단이다. 나는 그들 전문가 집단이 우선  그들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기가 지지하는(이라 쓰고 '줄 서 있는'이라고 읽는다) 후보가 다른 후보보다 나은 비젼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겠지만 그것은 우선 자기 양심을 배반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후보들의 여러 공약 중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이 경부대운하가 최근 논쟁인 듯 한데 이 역시 결국 숫자 놀음이다. 어떤 보고서에는 사업성이 없는 것으로 나오고 이명박 후보의 공약에는 경제효과가 상당한 것처럼 보인다.  그냥 나같은 평범한 사람(공약의 구체적 내용은 살펴보지 않고 그냥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보기에도 무리한 사업이고 경제성이 없어 보이는데 이명박 후보는 이에 사활을 걸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대형 교통관련 건설 사업은 지금까지의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사업구상시의 그 장밋빛이 그냥 운영기관에게는 재정상의 적자로, 나아가 정부에게는 재정부담로 이어지어 온 것을 알 수 있다.(적자=빨간색=장밋빛이라고 우긴다면 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이 제시하는 경제효과에 대한 분석은 이명박 후보의 전문가 집단에서 나왔을텐데 이들이 정말 '학자적 양심'을 가지고 그러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 외에도 여러 후보들이 늘 선거철이면 그럴듯한 공약으로 민심을 사고자 하는데 거기에 참여한 지식 전문가들이 정말 '양심적으로' 그 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동의하는지 묻고 싶다.

각 캠프에 조언을 해주고 정책개발을 해주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 정책개발 및 정책 조언의 원칙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지식인으로서의 고민과 학자적 원칙은 지켜야 할 것이다. 지식인의 학자적 양심이란 자기의 개인적 이익에 반대된다 할지라도 배우고 익힌 지식을 투명하고 객관적인 기준하에 적용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싶다.

전문가 그룹은 정책공약 개발뿐 아니라 제시되고 있는 공약에 대해 말 그대로 '검증'을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공약에서 가정하고 있는 내용이 얼마나 합리적이며 그 공약의 실현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전문가적인 지식과 식견에 바탕하여 분석하여야 할 것이다. 이 때 '학자적 양심'에 따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분석과 대안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일반인들이 각 후보의 공약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 때 보다 깊이있는 정보의 분석이 가능한 지식 전문가 그룹은 객관적 분석에 바탕을 둔 냉정한 평가를 통하여 올바른 여론을 조성하는데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지식인들이 선거에서의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여부와는 별개로 정책 분석에 있어서는 객관성을 잃지 않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각 후보군의 정책자문단을 보면 학자적 양심을 지닌 전문가 그룹이라기 보다는 그야말로 나중에 한 자리 바라는 심정의 '줄서기' 같아 씁쓸하다. 정치인들의 '철새행각'이야 많이 봐 왔고 원래 그런 사람들이려니 하지만 올바른 여론을 이끌어 가야 할 지식인들마저 양심을 버리고 자기 이익 찾기에 급급하고 있는 듯 해서 아쉽다.

어쩌면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 이 글 자체가 '많은 교수, 박사 등의 전문가들이 학자적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다'는 순진한 (혹은 비현실적인) 가정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는 공부를 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써 얼마나 깨끗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학자적 양심을 잃지않고 살아야겠다는 나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하다.

* 글을 쓰고보니 중앙일보에서도 비슷한 논지의 사설이 올라왔다.
- 관련 글: 중앙일보, [사설] 지식인의 대선 줄서기 너무 심하다 (2007/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