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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걷고싶은 도시만들기 시민연대(도시연대)' 기관지인 "걷고싶은 도시" (2010년 9/10월호)에 투고했던 글이다.

1974년 8월 15일 당시 기술로는 아주 획기적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다. 36년이 지난 지금은 서울시 전체 지하철노선이 9개 노선, 317.0km의 길이로 확장되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09년 통계로 지하철 이용객은 하루 평균 628만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지하철의 교통수송분담률이 2009년 현재 버스의 28.8%보다 높은 33.8%로 대중 교통수단은 버스에서 지하철로 중심이 이동했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서울의 대표적인 지하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코엑스몰엔 하루 평균 10만 가까운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많은 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그린캠퍼스’ 차원의 대규모 지하주차장 건설과 지상공간의 녹지조성 등도 지하공간 개발의 새로운 추세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만큼 오늘을 사는 서울시민의 생활에 지하공간에서의 활동은 전혀 낯설지 않은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때로는 중요한 삶의 터전으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부터 시내 지하공간의 체계적 활용을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 용역을 발주하는 등 대규모 지하도시 개발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기존의 지하차도 혹은 구역별 지하상가 개발같은 단순한 개발이 아니라 마스터 플랜을 통하여 지하도시 사업구역 내 전체 지하공간을 하나의 ‘지하도시’ 또는 ‘지하도로’로 네트워크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롭게 조성된 지하공간을 지하철, 주차장은 물론 쇼핑,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유형별 설계·관리지침과 방재기준, 지하 네트워크 조성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지하공간 종합기본계획')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서울시의 '지하도시' 또는 '(대심도)지하도로' 계획은 캐나다 몬트리올의 지하도시(Underground City)와 스페인 마드리드시의 지하도로 건설사례(순환도로 'M30'의 지하구간)를 벤치마킹해 지하공간에 대한 도시계획적 접근차원에서 추진한다고 한다.

이러한 서울시의 ‘지하도시 개발’ 계획에 대해 도심 지하공간 개발은 도심에서의 새로운 공간 창출, 지상교통난 해소, 에너지 절감 등의 편익 등 개발하기에 따라 무한한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는 `창조적 SOC사업`이라는 찬성의견이 있다. 반면, 지하공간 개발에 따른 환기, 소음, 먼지 등 환경오염문제, 공사기간 중의 지상교통난 문제와 지하공간 자체의 안전성문제로 인한 반대의견도 있다.

본 글에서는 지하도시 개발의 필요성(지상공간 개발의 한계)이나 당위성(지하공간 개발의 편익)에 대한 찬반논의보다는 지하도시의 개발로 예상되는 교통정책의 변화와 관련한 논의를 하고자 한다. 논의에 앞서 지하도시 개발과 관련한 기술적인 문제는 현재 세계적인 수준의 국내 건설기술의 발전을 인정하여 지하도시 개발의 기술적 문제는 없는 것으로 가정한다.

1. 서울시 교통정책의 중심방향을 분명히 하자.

현재까지의 서울시의 교통정책의 중심방향은 사람과 환경 중심의 '보행자 우선' 및 '대중교통 우대정책'으로 이해된다. 이를 위해 다른 나라들도 인정하는 지하철망을 구축하였으며, 대중교통 환승시스템 개발을 통한 이용자 편의성 증대, 이른바 저탄소 녹색성장 시대에 걸맞는 자전거 이용의 촉진을 추진해 왔다.

그런데, 지하도시의 개발을 통한 지하도로의 네트워크화는 지하공간에서조차 자동차와 지하철의 경쟁구도가 조성될 수 있으며, 이 경우 대중교통 정책의 방향성과 상충돼 정책 실패로 이어질 수 있고, 지하철을 포함한 대중교통의 교통수단분담 기능은 더욱 약해질 수 있다. 아울러, 이미 공급계획이 확정된 지하철노선의 확장 및 경전철 노선의 신설 계획 등에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 특히,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라면 사업계획 당시의 수요예측에 큰 변화가 불가피하며 이는 전체적인 사업계획의 수정 및 변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 아울러, 기존 (지상)도로 건설 및 확장계획과의 중복 투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서울시는 지하도시의 개발계획 이전에 교통정책의 중심방향을 분명히 잡고 정책목표달성에 가장 효과적인 정책수단을 개발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2. ‘지속가능성’이라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자

필자는 2002년부터 6년동안 미국 유학생활을 하면서 한국(지리적으로 보다 좁혀서 말한다면 서울)을 떠나 있었고, 귀국하여 보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교통과 관련하여서는 대중교통환승 시스템과 버스 중앙차선이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었다. 또 눈에 띄는 변화 한 가지는 많은 고가도로가 철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청계천 복원과 더불어 사라진 청계고가도로를 비롯하여 혜화고가도로, 서울역 주변의 회현고가도로 등이 사라졌다.

고가도로는 건설 시점을 전후로 한 해당 지역의 교통난 해소를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그런데, 30여년이 지나면서 노후된 고가도로의 안전성문제와 더불어 교통난 완화라는 건설목적과는 달리 오히려 교통체증을 유발하며 주거환경 및 도시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되었다.

지하도시 개발계획 역시 현재의 상황에서는 개발의 필요성이 커 보이지만 향후 30년 혹은 그 이후를 내다보는 ‘지속가능성’을 검토하면서 계획하는 것인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지하공간은 화재나 지진이 발생하였을 경우 대형참사로 이루어 질 수 있어(예: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안전성 문제에 대해서는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깊이있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안전성 문제까지 고려하였을 경우에도 지하도로가 지상도로의 역할을 충분히 대체할 능력이 있는 교통수단이 될 지는 의문이다. 자칫 안전성이나 교통난 해소의 역할부재로 건설된 지하도로가 폐쇄된다면 말 그대로 막대한 돈을 땅에 묻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3. 해외사례 벤치마킹, ‘실패사례’도 하자

우리나라의 경우 새로운 정책을 개발할 때 해외의 성공사례를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목표인양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대부분 성공사례를 결과위주로 벤치마킹할 뿐 그 과정까지도 꼼꼼히 살펴보는 경우는 드물다. 우선, 성공사례의 정책목표와 서울시의 정책목표가 정확히 일치하는가 살펴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정책목표와는 다른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그리고, 지하도시나 지하도로의 경우 외국과 우리나라의 기후조건, 지형조건 등의 근본적인 차이로 정책추진의 오류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또, 계획에서부터 건설, 운영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많은 문제와 시행착오를 거쳐 이룬) 성공사례를 우리는 짧은 기간에 성공시킬 수 있다고 희망하는 것은 지나친 자신감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외국사례라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지하도로 개발의 실패사례는 유로터널이라 불리기도 하는 채널터널(channel tunnel)과 미국 역사상 가장 비싼 도로 프로젝트로 알려진 "Big Dig"(보스톤 시내와 로간 국제공항을 연결하는 길이 12km의 지하도로)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업 모두 화재사고 혹은 터널붕괴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으로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운영기관의 심각한 재정적자 문제 또한 실패의 결과로 이야기 된다.

또한, 최근 서울시와 서울시 공기업의 23조에 달하는 부채규모에 대한 논란이 있는 가운데 지하도시 개발에 투입될 서울시 재정규모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의 재원확보의 문제도 실패사례로부터 벤치마킹하여야 한다.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서울시의 재정이 일정정도 투입되며, 통행료 수익만으로는 운영기관의 수익을 보장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결론적으로, 서울시의 지하도시 혹은 지하도로 네트워크화 계획은 보다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시의 계획대로라면 친환경적인 제2의 도시건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이러한 대규모 지하공간 개발사업은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용편익분석 및 다양한 가정하의 충분한 시뮬레이션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안전 및 시재정 문제와 결부된 이러한 대규모 프로젝트는 기업 경영처럼 위(시장)에서 지시하고 밑에서 논리를 개발하고 추진하는 Top-down 방식이 아니라, 밑(시민)에서 필요성이 제기되고 발생가능한 다양한 문제에 대해 전문가그룹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져서 진행되는 Bottom-up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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