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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주은이네 이야기

종현이에게 이번 분향소 조문이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날 갑자기 TV화면이 시커멓게 바뀌면서 음악만 나왔다. 나중에 알고보니 '박정희 대통령 서거'라고 하였다. '서거'라는 어려운 말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분위기인 것 같았다.

그리고 학교 선생님이 조문을 가보라고 하셨다. 그때까지 집안에서 장례를 치러 본 경험이 없어서 조문이라는 것이 뭔지도 몰랐지만, 선생님 말씀대로 혼자서 춘천시내 강원도 도청 옆의 분향소를 다녀온 기억이 난다.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왠지 모를 엄숙한 분위기,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영정앞에 피워진 향내가 기억난다. 또 내 차례 앞에서 어떤 아주머니께서 통곡을 하시면서 우시는데 나도 모르게 그냥 따라서 눈물이 났었다. 무엇을 기원했는지는 모르지만 짧은 묵념을 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조문이라는 것을 해 보았다.

어제 밤에 종현이를 데리고 덕수궁 분향소를 다녀왔다. 요즘엔 아이들이 더 바빠서 스케줄 정하기도 어렵고, 또 종현이는 친구와 놀고 싶은 생각때문인지 가기 싫다고 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함께 다녀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숙제 안 해도 좋으니 그냥 같이 가자고 데리고 갔다. (그래도 숙제는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 다 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이 많다 보니 내 어린 시절 기억속의 엄숙한 분향소 분위기는 아니었다. (정부 공식 분향소의 모습은 그런 분위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시청 지하철역과 덕수궁 담벼락을 가득 채운 노무현 대통령께 보내는 메모들과 사진들 속에 그리워하고 고마워하고 안타까워 하는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의 안내와 통제를 따라 '근조' 리본을 달고, 국화꽃을 헌화하였다. 묵념을 하며 남은 가족들에게 힘을 주시라고 기도했다. (종현이는 무슨 기도를 했을지 모르겠다.)

세월이 흐르고 종현이가 자라서 이 날을 어떠한 모습으로 기억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정치인 노무현'이 종현이가 커서는 어떻게 평가받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간 노무현'을 잃은 아빠세대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사는 세상'에서 살며 이 날을 떠 올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