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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vs 미국사회

먹을거리 안전에 민감해진 한국, 교통안전 의식은 글쎄...

예전에 일부 몰지각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걸로 장난치는' 뉴스가 종종 나왔을 때 한 친구가 농담처럼 우리들이 죽으면 우리 후손들은 시신의 부패정도를 보고 우리 세대의 빈부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거라고 말했었다. 시신의 부패가 심하면 부자, 시신이 썩지 않고 있으면 가난한 서민이란다. (왜냐하면 우리 서민들은 매일 방부제 들어간 음식을 먹고 지내는데 부자들은 유기농이니 뭐니 비싸고 안전한 먹을거리만 골라 먹을테니까 말이다.)

이 이야기를 나눴던 때가 10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먹는 걸로 장난치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다른 점이라면 이제는 그 장난의 주체가 '세계의 제조공장' 중국이 되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이래저래 먹을거리 안전에 관한 뉴스가 나오다 보니 우리들도 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해당 화학물질이 무엇이며, 어떤 반응을 보이며, 많이 섭취했을 경우 증세는 어떻고 등등 공부까지 해야 한다.

올 상반기 전국을 뒤흔들었던 광우병 촛불집회도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단순히 광우병 문제 한가지때문에 그 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길거리에서 며칠씩이나 이명박 정부를 성토했던 것은 아니라고 본다. 국민들은 국민과 올바를 소통을 하는 대통령 및 정부를 원했고, 대통령도 (형식적일지는 몰라도) 반성의 자세를 보였고, 덕분에 대운하도 (아직까지는) 접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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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당시 유행했던 만화의 한 컷)


그런데, 우리들의 높아진 먹을거리 안전의식에 비해 교통안전 의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별로 변화가 없는 것 같다. 버스나 택시기사들의 신호위반은 그렇다쳐도 차량이 뜸한 거리에서 일반차들도 신호를 무시하는 모습이 너무 자주 보인다. 특히, 어린이 교통안전에 대한 명문화된 법규와 홍보가 많이 되었을텐데도 아직 불안한 모습이 많이 보인다. 어린 아이들을 카시트 없이 그냥 안고 태우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앞자리에 어린 아이들을 앉히기도 한다. 때로는 자동차 규정 정원보다 많은 인원의 어른, 아이들이 함께 타려다 보니 아이들은 어른들 좁은 틈에 앉거나 무릎에 앉아 간다.

아침에 종현이 학교 가는 길에 가다 보면 동네 태권도 학원차인 모양인데 정원이 12명인 승합차에 아이들을 한 20명 태워간다. 앞자리에도 운전사 빼고 3명은 더 앉아서 간다. 학원 서비스 차원에서 아이들을 태워다 주는 모양인데 좁아서 (앉아있는 것도 아니고 서있는 것도 아니면서) 어정쩡하게 앉아서 간다. 내가 어느새 미국적인 시각에 길들여진 탓일지는 몰라도 아이들의 모습이 왠지 불안해 보인다.

여기서 미국의 어린이 교통안전 규정에 대해 잠시 언급한다. 미국 모든 주에 적용되는지 모르겠지만 캘리포니아에서는 바로 태어난 신생아도 자동차로 이동해야 할 경우 신생아용 카시트가 없으면 아이를 차에 태울 수가 없다. (산모가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을 경우 보통은 바로 다음날 퇴원하는데 이때 간호사들이 그 조그만 아이를 카시트에 태워서 뒷좌석에 앉히는 것까지 봐야 퇴원이 가능하다.) 또 아이가 6살 혹은 60파운드 (약 27kg) 될 때까지는 어린이는 의무적으로 카시트를 해야 하며, 특별한 예외사항이 없는 한 12살 이하의 어린이는 (에어백의 위험성때문에) 자동차 앞자리에 앉아서 갈 수 없다. 이를 위반할 경우 무거운 벌금과 벌점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나 어린이 안전과 관련된 교통범칙금은 강도가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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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용 카시트에 앉아(?) 있는 주은이: 태어난지 한 달 정도 됨)


어린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이러한 규정에 낯설어 하기도 하고, 카시트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 달래다 지쳐 미국의 교통안전 규정이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 하기도 한다. 반면에 촛불집회가 한참 진행될 당시 미국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가끔) 먹던 나로서는 광우병에 대한 위험이 약간은 과장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여기서 미국에서 소비되는 쇠고기와 한국으로 수입되는 미국 쇠고기의 차이는 논외로 하자.)

높아진 먹을거리 안전의식만큼 (어린이) 교통안전 의식도 높아져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의식이 아닌 실천이 더 중요하지만 말이다.)

* 아직 차가 없다보니 차를 얻어탈 기회가 종종 있는데 얻어타는 주제에 주은이 카시트 해야 한다며 집에 보관중인 카시트를 가져올 용기를 못 내고 나 스스로도 가끔  위에서 언급한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게 '오십보 백보'지만 같이 노력하자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