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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소통이 어려운 이유

미국에서 사는 한인 부모와 자녀들이 소통하는 모습은 얼핏 보면 참 신기하다. 부모세대는 한국어로만 이야기하는데도 자녀세대는 어찌된 일인지 영어로만 이야기한다. (혹은 영어와 한국어가 마구 섞여서 이야기 하는데 부모들의 영어발음이, 그리고 자녀들의 경우 한국어 발음이 신통치 않다.) 한국어가 더 편한 부모 세대와 영어가 더 편한 자녀 세대간에 서로 다른 두 언어가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언어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것은 소통의 당사자들 즉, 부모와 아이들 사이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상대방의 말이 외국어라 말하기는 힘들어도 서로 상대방의 말을 이해는 한다. 또 상대방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경우 적어도 서로 되묻는 과정을 통해 이해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그리고 때로는 부모는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을 안 해도 알고, 아이들도 부모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가끔씩 종현이와의 소통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가끔은 종현이의 영어 자체를 못 알아 듣겠고, 또 영어는 알아 듣겠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를 모르겠다. 예전에는 종현이에게 직접 책도 읽어주고, 종현이가 즐기는 TV 만화 프로그램과 영화도 같이 보고, 놀이도 같이 하다 보니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았다. 그런데 이제 종현이가 읽는 책을 일일이 다 읽어보지는 못하겠고, TV나 영화도 예전에는 만화와 애니메이션만 좋아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직접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등장인물들에 대해 누가 누구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못 알아 듣겠다. (한국 연예인도 잘 모르겠는데 미국 연예인들 소식은 정말이지 더 모르겠다.)

무엇보다 요즘에 종현이가 제일 관심가지고 좋아하는 것이 농구인데 NBA 농구 선수들 이야기를 하는데 연예인보다도 더 모르겠다. 얼마 전 NBA 플레이 오프(Playoffs)를 보면서 코비(Kobe Bryant)가 어쩌고 저쩌고까지는 그나마 알겠는데 잘 모르는 팀 선수들에 대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대꾸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또 당시 농구를 같이 보던 것도 아니고 나는 내 할 일로 바쁘던 때라 한쪽 귀로 흘려 들으며 '그래', '종현이가 잘 아는구나', '아빠는 모르겠는데...'만 연발한다. 그러다보니 종현이도 아빠의 무성의한 답변을 눈치채고는 실망스런 표정을 짓는다.

아이와의 소통에 실패하고 있으니 좋은 아빠가 되려면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소통이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상대방의 관심사에 관심을 갖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A를 원하는데 A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는 노력없이 B를 대답하면 올바른 소통이 될 수 없다.

둘째, 상대방의 이야기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어로 대화하는 경우 가끔씩 전체를 못 알아듣고 몇 단어만 알아 들었을 경우 내 스스로 상상을 해서 이런 이야기겠거니 단정하고 대답을 하다보면 엉뚱한 대답을 하게 된다.

셋째,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던 내 대답을 이미 정해놓고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 경우이다. 가끔 블로그에서 댓글로 논쟁이 붙었을 때 보면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면서도 말꼬리를 잡고 자기가 주장하는 바를 굽히지 않아 논쟁이 더 커지고 소모적으로 되는 경우를 보곤 한다.

요즘 한국 사회의 제일 큰 화두 중의 하나도 정부와 국민간의 '소통'인 것 같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소통이 원활한 것 같지는 않다. 미주 한인들과 달리 모두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면서도,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서로 알고 있으면서도 소통이 잘 안되는 것 같다.

아무쪼록 서로 상대방의 주장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힘(공권력)이 아닌, 폭력이 아닌 방법으로 소통에 힘썼으면 하는 바람이다.